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6·25전쟁, 그리고 그 뒤엔 우리가 채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쟁영웅이 있다.
오늘은 6·25전쟁 당시 지상군 근접지원, 적 보급로 차단 등의 임무를 수행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에 대해 알아보자.
▲작전을 세우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는 6·25전쟁에서 부산 수영,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오산 비행장 등 최전방 기지에 배치되어 주요 작전을 수행했으며, 연 병력 826명이 참전하여 총 12,405회의 출격기록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적군 전차 40여 대와 야포 220여 문, 대공포 147문, 보급품 보급소 500여 개소 등을 파괴 및 파손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에서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함에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서 이를 지지, 제2전투비행대대의 파병을 결정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고 아프리카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파병했다.
제2전투비행대대는 실제 전투 임무를 개시한 1950년 11월 19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최전방 기지에서 지상군 근접지원, 적 보급로 차단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36명이 전사했고, 8명이 포로가 되는 희생을 겪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는 6·25전쟁 참전에 따른 공로로 대한민국 무공훈장 11개, 미국 은성훈장 2개를 비롯한 각종 훈장 1,109개, 유엔 훈장 797개 등을 수여받았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6·25전쟁, 그리고 그 뒤엔 우리가 채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쟁영웅이 있다.
오늘은 6·25전쟁 당시 지상군 근접지원, 적 보급로 차단 등의 임무를 수행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에 대해 알아보자.
▲작전을 세우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는 6·25전쟁에서 부산 수영,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오산 비행장 등 최전방 기지에 배치되어 주요 작전을 수행했으며, 연 병력 826명이 참전하여 총 12,405회의 출격기록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적군 전차 40여 대와 야포 220여 문, 대공포 147문, 보급품 보급소 500여 개소 등을 파괴 및 파손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에서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함에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서 이를 지지, 제2전투비행대대의 파병을 결정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고 아프리카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파병했다.
제2전투비행대대는 실제 전투 임무를 개시한 1950년 11월 19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최전방 기지에서 지상군 근접지원, 적 보급로 차단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36명이 전사했고, 8명이 포로가 되는 희생을 겪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는 6·25전쟁 참전에 따른 공로로 대한민국 무공훈장 11개, 미국 은성훈장 2개를 비롯한 각종 훈장 1,109개, 유엔 훈장 797개 등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