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에 위치한 죽전캠퍼스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단대로에 위치한 천안캠퍼스가 있다.
오늘은 우리 모교가 있는 죽전과 천안, 이 지역들의 명칭에 대해 알아보았다.
▲ 죽전 캠퍼스 전경
죽전[竹田]
죽전동 죽전리는 수지읍 소재지의 풍덕천 동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본래 용인군 수진면(옛 수지면의 이름)의 지역으로서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바위, 점촌, 풍덕내, 일부를 병합하여 죽전리라 해서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1983호에 의하여 다시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이곳 지명 유래는 이곳으로부터 약 10리 되는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와 관계가 깊다. 정몽주 선생은 고려 공양왕 4년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 등에 의해 피살되었다. 당시 정몽주 선생의 시신은 개성 근처 풍덕이라는 곳에 모셨다. 그 후 19년 뒤인 1411년(태종 11년 신묘) 선생의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 풍덕천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상여에 영정이 날아올라 지금의 묘소에 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영정을 따라가 보니 가히 명당이라 여겨 여기다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몽주 선생을 모신 영정과 상여가 이 땅을 지나갔기에 만고에 충신을 사모하는 민초들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죽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죽이란 대나무로 충신을 뜻하며 절은 마디가 있는 나무이니 역시 대나무라 충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곳 말고도 정몽주 선생으로 인해 지명이 바뀐 곳이 선죽교이다. 이곳은 처음 이름이 선지교였으나 선행 피살 후 죽자를 넣어 선죽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죽절이 죽전으로 변했다. 그 후에는 죽전과 선생의 인연은 계속되었는데 그것은 선조 9년(1576, 병자년)에 선비들이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죽전서원이라 했다. 이 서원은 선조 25년에 있었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선조 41년(1608)에 모현면 능원리에 다시 세워 충렬서원이라 했다.
죽전동는 원래, 대지, 감바위, 내대지, 세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었으나, 요즘은 인구 증가로 여러 동네로 분동되었으며, 지금처럼 아파트단지가 계속 들어서면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죽전동은 산으로 대지산이 있고 이 산에는 어름박골 이라는 약수터와 괸바위, 덤바위, 지경바위가 있으며 기묘 명현 십청헌 김세필 선생의 묘소가 있다. 그리고 큰 물로는 대지 앞에 장장포 라는 곳이(용인현지) 있었다 하나, 지금은 평범한 하천이 되었다.
▲천안 캠퍼스 전경
천안[天安]
충남의 천안시와 천안군은 하늘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고려 태조가 ‘하늘 아래의 으뜸가는 요충지(要衝地)’라고 명명한 데서 땅 이름이 기원했기 때문이다. 천안삼거리로 통용되는 이곳은 교통의 요지로 기능해 왔으므로, 요충지로서 역할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요에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제멋에 겨워서 축 늘어졌구나 흥’으로 전개되는 노래 가사는 삼거리의 정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교통 기능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철도교통으로 이어지고 경부선 · 장항선 · 안성선이 십자로 형태로 놓이면서 철도의 사거리가 되었다. 삼거리의 전통에다 물자와 여객수송의 새로운 사거리 기능이 더해지면서, 근대 도시의 기반을 확립해 갔다.
이후 자동차 교통시대를 맞이하여 교통 노선과 장비를 현대적인 것으로 교체하고, 도시화를 촉진한 결과 1963년에 시 승격을 가져왔다. 시 승격은 기존 읍내의 도시 지역에 국한된 관계로 현재의 인구가 21만 명으로 증가되었더라도, 주변의 배후 촌락은 천원군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바탕을 둔 천안(天安)의 땅 이름을 가지면서도, 한 때는 중심지 · 배후지로 분화되기도 했지만, 현재 고속철도 · 고속전철의 역이 들어서면서 통합국면을 맞고 있다.
천안에는 지명 유래와 관련된 태조공원이 있고, 일제의 압정하에서 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아우네 장터와 유관순(柳寬順)열사의 사당이 있다. 해외교포 유해의 안장 터이며 고속도로 휴게소인 망향의 동산도 이곳에 있다. 최근에 목천(木川)에 독립기념관을 준공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본고장다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단국대 · 상명대학교 등의 분교가 설립되어 학원도시로 발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부고속전철의 서울 외곽 첫째 역으로 계획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단국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에 위치한 죽전캠퍼스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단대로에 위치한 천안캠퍼스가 있다.
오늘은 우리 모교가 있는 죽전과 천안, 이 지역들의 명칭에 대해 알아보았다.
▲ 죽전 캠퍼스 전경
죽전[竹田]
죽전동 죽전리는 수지읍 소재지의 풍덕천 동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본래 용인군 수진면(옛 수지면의 이름)의 지역으로서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바위, 점촌, 풍덕내, 일부를 병합하여 죽전리라 해서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1983호에 의하여 다시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이곳 지명 유래는 이곳으로부터 약 10리 되는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와 관계가 깊다. 정몽주 선생은 고려 공양왕 4년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 등에 의해 피살되었다. 당시 정몽주 선생의 시신은 개성 근처 풍덕이라는 곳에 모셨다. 그 후 19년 뒤인 1411년(태종 11년 신묘) 선생의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 풍덕천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상여에 영정이 날아올라 지금의 묘소에 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영정을 따라가 보니 가히 명당이라 여겨 여기다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몽주 선생을 모신 영정과 상여가 이 땅을 지나갔기에 만고에 충신을 사모하는 민초들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죽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죽이란 대나무로 충신을 뜻하며 절은 마디가 있는 나무이니 역시 대나무라 충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곳 말고도 정몽주 선생으로 인해 지명이 바뀐 곳이 선죽교이다. 이곳은 처음 이름이 선지교였으나 선행 피살 후 죽자를 넣어 선죽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죽절이 죽전으로 변했다. 그 후에는 죽전과 선생의 인연은 계속되었는데 그것은 선조 9년(1576, 병자년)에 선비들이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죽전서원이라 했다. 이 서원은 선조 25년에 있었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선조 41년(1608)에 모현면 능원리에 다시 세워 충렬서원이라 했다.
죽전동는 원래, 대지, 감바위, 내대지, 세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었으나, 요즘은 인구 증가로 여러 동네로 분동되었으며, 지금처럼 아파트단지가 계속 들어서면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죽전동은 산으로 대지산이 있고 이 산에는 어름박골 이라는 약수터와 괸바위, 덤바위, 지경바위가 있으며 기묘 명현 십청헌 김세필 선생의 묘소가 있다. 그리고 큰 물로는 대지 앞에 장장포 라는 곳이(용인현지) 있었다 하나, 지금은 평범한 하천이 되었다.
▲천안 캠퍼스 전경
천안[天安]
충남의 천안시와 천안군은 하늘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고려 태조가 ‘하늘 아래의 으뜸가는 요충지(要衝地)’라고 명명한 데서 땅 이름이 기원했기 때문이다. 천안삼거리로 통용되는 이곳은 교통의 요지로 기능해 왔으므로, 요충지로서 역할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요에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제멋에 겨워서 축 늘어졌구나 흥’으로 전개되는 노래 가사는 삼거리의 정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교통 기능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철도교통으로 이어지고 경부선 · 장항선 · 안성선이 십자로 형태로 놓이면서 철도의 사거리가 되었다. 삼거리의 전통에다 물자와 여객수송의 새로운 사거리 기능이 더해지면서, 근대 도시의 기반을 확립해 갔다.
이후 자동차 교통시대를 맞이하여 교통 노선과 장비를 현대적인 것으로 교체하고, 도시화를 촉진한 결과 1963년에 시 승격을 가져왔다. 시 승격은 기존 읍내의 도시 지역에 국한된 관계로 현재의 인구가 21만 명으로 증가되었더라도, 주변의 배후 촌락은 천원군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바탕을 둔 천안(天安)의 땅 이름을 가지면서도, 한 때는 중심지 · 배후지로 분화되기도 했지만, 현재 고속철도 · 고속전철의 역이 들어서면서 통합국면을 맞고 있다.
천안에는 지명 유래와 관련된 태조공원이 있고, 일제의 압정하에서 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아우네 장터와 유관순(柳寬順)열사의 사당이 있다. 해외교포 유해의 안장 터이며 고속도로 휴게소인 망향의 동산도 이곳에 있다. 최근에 목천(木川)에 독립기념관을 준공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본고장다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단국대 · 상명대학교 등의 분교가 설립되어 학원도시로 발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부고속전철의 서울 외곽 첫째 역으로 계획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